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W. 부시/생애 (문단 편집) === 2000년 대통령 선거 출마 === 2000년 대선을 앞두고 조지 W. 부시는 공화당의 유력한 프론트러너로 올라섰다. 유일한 경쟁자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었다. "매버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중도보수적인 입장과 전쟁영웅이라는 과거 행적이 더해져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되었고 실제로 초기 경선에서 조지 W. 부시를 꺾고 몇차례 1위를 차지했다. 다급해진 [[칼 로브]]는 존 매케인을 상대로 비열한 네거티브를 시전했다. 그가 입양한 흑인 딸이 사실은 불륜으로 만든 자식이라는 헛소문을 퍼트린 것이다. 심지어 존 매케인이 [[북베트남]]에 포로로 잡혀있었던 시절 적군에게 술술 비밀 정보를 불었다며 "송버드 매케인"(Song bird, 노래하는 새)이라는 별명까지 만들었다.[* 몇년간의 고문을 버티며 힘겨운 포로 생활을 한 매케인에게 아주 모욕적인 별명이고 당시에도 칼 로브가 너무 나갔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 여파로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존 매케인이 조지 W. 부시에게 패배하면서 부시가 추진력을 받았고, 부시는 매케인을 꺾고 2000년 대선의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다. 존 매케인은 이때 부시와 [[칼 로브]]에게 당했던 기억 때문에 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조지 W. 부시를 원수 취급했으며 2004년과 2008년 대선에서 모두 부시를 비난하는 등 공화당 내 반부시파의 선봉장이 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HwQBeMUj_ps, width=100%)]}}} || || '''고어 대 부시''' || >I'm not so sure the role of the United States is to go around the world and say this is the way it's got to be. ... but I think one way for us to end up being viewed as the ugly American is for us to go around the world saying, we do it this way, so should you.[br]저는 미국의 역할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건 이런 식으로 해야돼" 라고 가르쳐주고 다니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미국은 이렇게 하니까, 너도 이렇게 해"라고 말하는게 결국은 '''[[테러와의 전쟁|추레한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마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 >조지 W. 부시, 2차 토론회에서 고어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며. 뒤이은 본선도 힘겨운 싸움이었다. 현직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지도는 60%를 넘기고 있었고, 토론회에서 [[조지 W. 부시]]는 [[앨 고어]]에게 탈탈 털리면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부시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토론회에서 고어가 부시보다 아는것도 많고 더 똑똑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 때문에 앨 고어가 너무 오만하고 잘난척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반대로 토론회에서 모르는건 모른다고 털어놓은 조지 W. 부시는 모르는건 많아도 친근감 있고 솔직한 후보처럼 보이게 되었는데, 이는 르윈스키 스캔들로 정부에 도덕성을 바라고 있던 여러 미국인들의 정서에 맞아 떨어졌다. 게다가, 고어가 토론에서 저지른 몇몇 말실수들이 부각되며[* 전반적으로 고어의 우세가 두드러졌지만, 고어는 부시의 정책에 공감한다는 말을 남발했고, 텍사스주가 의료 문제에서 미국에서 47등이라고 했는데 이게 거짓으로 드러나며 타격을 입었다.] 정작 여론조사에서는 부시가 1차 토론에서 이겼다는 여론이 더 높게 나왔다. 더구나 [[앨 고어]]는 빌 클린턴의 높은 인기를 이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의 러닝메이트 [[조 리버만]]은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 당시 소리를 지르며 빌 클린턴의 성추문을 공격한 민주당의 대표 보수파였고 클린턴 지지자들은 리버만이 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매우 분개해했다.[* 이후 리버만은 200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당을 나가서 무소속으로 상원의원으로 당선되더니, 2008년 대선에는 매케인을 아예 지지하는 행보를 보인다. 현재는 No-Labels 운동을 주도하며 [[조 맨친]] 같은 민주당 중도파를 2024년 대선에서 무소속 후보로 세우자고 하고 있는데 민주당 지지층들 분위기는 죽을때까지 고춧가루만 뿌린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아직도 리버만을 1972년 토머스 이글턴, 1984년 [[제럴딘 페라로]]와 더불어 민주당 역사상 최악의 부통령 후보 중 하나로 꼽을정도로 이를 박박 간다.] 고어는 60%가 넘는 클린턴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지 않고 클린턴과 자신을 꾸준히 구분지으려 했는데 이 때문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다. 결정적으로 제3지대 좌익 후보로 출마한 녹색당의 [[랄프 네이더]]는 3%에 달하는 진보 지지자들의 표를 갈라놓아 조지 W. 부시가 우세를 잡았다. 선거 사흘 전, 상술한 1976년의 음주운전 사건이 발각되어 조지 W. 부시에게 위기가 닥치기도 했으나, 조지 W. 부시는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자신이 1986년 이후 [[빌리 그레이엄]]과 [[로라 부시]]의 도움으로 알코올 중독을 극복했으며 왜 하필 선거 사흘 전에 이런 문제가 터졌겠냐고 앨 고어를 맹공해 지지율을 끌어 올렸다. 그 결과, 조지 W. 부시는 초기 앨 고어의 우세를 뒤집고 대중 득표에서는 0.5% 뒤졌지만 더 많은 주에서 우세를 잡아, '''271표'''의 선거인단을 얻어 당선되었는데 이는 [[187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가장 적은 선거인단 표차로 당선된 결과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주별 결과.svg|width=100%]]}}} || ||<#0d164a> '''2000년 미 대선의 결과''' || 다만 이 선거 결과가 미심쩍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단독으로 선거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플로리다]]'''주가 문제가 되었다. [[젭 부시]]가 주지사로 재직중이었던 플로리다 주에서 민주당 강성 지지층인 흑인들의 투표가 어려웠고[* 이 문제는 후일 [[스테이시 에이브럼스]]가 조지아 주지사로 출마해 다시 제기한 바 있는데, 이 여파로 조지아 주를 비롯한 몇개 주에서 흑인 투표율이 급등해 조지아 주가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투표 방식도 어려워서 노년층이 투표에 어려움을 겪었다. 플로리다 주의 선거 방식은 원하는 후보의 기호에 펀치를 내서 구멍을 뚫는 "천공 카드" 방식이었는데, 정작 펀치를 뚫어야하는 칸이 후보가 나열된 배치 순서와 달랐다. 오로지 조지 W. 부시만 배치 순서와 펀치 순서가 같았고, 앨 고어는 2번째 순서로 이름이 배치되었지만 정작 펀치 순서는 4번째 칸에 해야했다. 이 때문에 많은 노년층 민주당 지지자들이 펀치 구멍을 앨 고어가 아닌 2번째 펀치 구멍, 즉 극우 성향 후보 팻 뷰캐넌에 해버렸다. 이런 저런 결과가 겹친 결과 표차는 '''1,000여표'''밖에 안났고 재검표 결과 '''537표'''까지 격차가 좁혀졌다! 다급해진 공화당은 재검표 중지 소송을 냈는데 놀랍게도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5대 4로 공화당 측 입장을 들어주면서''' 재검표가 중지되고 부시가 플로리다에서 단 500여표차로 승리했다는 판결이 나왔다. 그 결과, 조지 W. 부시는 엄청난 논란 속에 2000년 12월 12일 대선 당선자로 확정된다. 조지 W. 부시를 위해 몇가지 변명을 하자면, 이 선거의 흐름 자체는 부시가 당선되는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유능한 컨설턴트 [[칼 로브]]를 앞세운 부시의 선거팀은 주도면밀하게 의제를 잡아 보수층의 투표 열의를 높인 반면, [[앨 고어]]의 선거 캠페인은 그야말로 재난에 가까웠다. 부통령 선정부터 의제 설정까지 하나도 정상인게 없었다. 특히, 플로리다의 히스패닉 커뮤니티가 이전과 달리 50대 50의 비율로 부시에게 표를 많이 준 것이 나타났다. 2000년 4월 일레인 곤살레스라는 쿠바 이민자가 법을 위반해 쿠바로 다시 송환된 것을 두고 고어가 "법은 법이고 불법 이민자는 강제 송환되어야한다"라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며 쿠바인 커뮤니티가 술렁인 것이 그 이유였다. 또한 부시 가문은 전통적으로 히스패닉과 친했기 때문에 히스패닉들이 부시에 많은 표를 줘 플로리다 주의 표심이 부시로 넘어간 것이 없잖아 있다. 고어가 선거전만 잘했었더라도 5%p 내외로 아깝게 진 뉴햄프셔(4인), 네바다(4인), 오하이오(25인), 미주리(11인), 콜로라도(8인), 애리조나(8인), 테네시(11인) 중 어느 한곳은 이겼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런 분쟁이 일어났을 일도 없다. 부시 측에 유리하게 해석하자면 유리한 기회를 놓친 앨 고어의 자업자득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잘 이루어지고 있던 재검표를 엎은 것은 미국 유권자들에게 매우 안좋게 받아들여졌고 현재까지 부시는 부정선거로 당선된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쓰게 된다. 어쨌든 조지 W. 부시는 클린턴의 전임이었던 그의 아버지 [[조지 H. W. 부시]]에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름으로써 미국 역사 두번째 부자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첫 번째는 [[존 애덤스]](2대)와 [[존 퀸시 애덤스]](6대).] 대통령 당선과 재임 당시 부시의 주요 지지 세력은 미국 공화당의 양대 최대 지지세력인 [[전미총기협회]](NRA)와 전통적인 보수 우익세력인 [[기독교 우파]]였다. 헌데 이와 대조적으로 부시 자신은 온정적 보수주의자(Compassionate conservative)임을 자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